Q.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제가 걸음마를 뗄 때쯤에는 아버지가 정말 잘나가는 미술 학원을 운영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게 됐고, 초등학생이 될 무렵 빚더미에 앉게 돼 환경이 매우 어려워졌죠.
초등학생 때는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부모님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플라스틱 부품에다가 고무 끼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설거지, 우유 배달, 택배 상하 차, 야구장 티켓 판매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죠.
그러다 중학생 때 우연히 디자인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그때 ‘나에게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미술을 전공하신 아버지는 사업이 잘 안되고 나서 저에게 한 번도 미술을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미술을 하면 망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죠. 당연히 예고 준비는 전혀 못했고 인문계고에 진학했어요.
고1 미술 수업시 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봤는데 선생님께서 미대를 권유하시더라고요. 물론 아버지는 말리셨지만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미대를 가고 싶었죠. 끈질 긴 설득 끝에 결국 허락을 받아서 지금의 자리에 와 있습니다.
Q. 어렸을 적 어떤 학생이었는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부모님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지 만 반대가 심하셨어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마음먹었죠. 그 자리에서 약속 세 가지를 드렸어요.
우리나라 미술 최고 대학인 홍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하겠다,
입학 후 홍대에서 디자인 일을 하겠다,
나라를 위한 일을 하겠다.
딱 이 세 가지를 약속 드렸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 성적을 내신 1등급, 실기 점수 A+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때부터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짜서, 죽도록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시간관리, 행동,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곤 결국 두 손을 드셨죠. 전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건 2학년 때부터예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더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원하는 성적을 얻어 홍대에 진학했고, 교수님과 교직원분들이 제 열정을 높이 사주셔서 홍대 디자인 실장을 2년 정도 했었어요. 또한 군대 역시 해군 연예병사 디자인 사병으로 입대를 하게 돼었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 꿈을 모두 이뤘다고 할 수 있죠.
젊음과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
국내 최고 미대, 단연 홍익대학교를 떠올릴 것이다. 그만큼 미술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꿈의 대학인 동시에 입시 경쟁이 매우 치열한 대학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중심지
국내 최고의 중심지, 경제 수준이 가장 높은 부촌, 고층빌딩 숲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강남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청년들의 희망 직장터이다. 오늘은 많은 이들의 로망인 홍대 시각디자인 학과를 졸업하고 강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명재영 씨를 만났다. 현재 그는 예술과 산업의 융합으로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홍대의 비전 아래 강남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이미 다양한 콜라보로 입소문이 나고 있는 ‘위디딧’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나아가 인재 양성의 꿈을 갖고 있다. 미술 분야 우수 대학 졸업을 앞두고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은 그이지만 어려운 가정환경과 부모님의 반대로 미술학도의 꿈을 이루는 데 있어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온 끝에 꿈에 다가선 그를 만나 고군분투했던 청년 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어떤 활동들을 많이 했는지.‘이것만은 잘했다’ 생각하는 활동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를 바탕으로 한 플래너가 많은 도움이 됐죠. 목표나 명언들을 적어두는 것도 좋아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끊임없이 계획을 하고 해야 할 일을 적었던 것 같아요.
목표를 설정하고 나니까 독하게 마음이 먹어지더라고요. 과거 가난해서 학원도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더 독하게 공부하고, 디자인을 했어요. 1등 아니면 죽겠다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생존을 위한 도구처럼 열심히 했어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 게 제일 잘한 것 같아요.
Q. 더 준비한 것이 있었는지.
후배들에게 Tip을 준다면. 중요한 것은 세 가지예요.
첫 째 형태
두 번째 완성도
세 번째 창의력
형태는 기본이고 창의력은 차별화되는 강점이 될 수 있죠. 완성도는 성실도와 비슷해요. 구조가 있어야 결과물이 잘 나와요.
기초 소양을 탄탄히 하는 게 중요해요. 기초가 탄탄하려면 무조건 디자인을 많이 봐야 해요.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습을 하는 게 Tip이라면 Tip이에요. 영단어를 복습하는 것처럼 계속 외우는 행위로 생각하시면 돼요.
Q.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제가 걸음마를 뗄 때쯤에는 아버지가 정말 잘나가는 미술 학원을 운영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문을 닫게 됐고, 초등학생이 될 무렵 빚더미에 앉게 돼 환경이 매우 어려워졌죠.
초등학생 때는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부모님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플라스틱 부품에다가 고무 끼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설거지, 우유 배달, 택배 상하 차, 야구장 티켓 판매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죠.
그러다 중학생 때 우연히 디자인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는데, 그때 ‘나에게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미술을 전공하신 아버지는 사업이 잘 안되고 나서 저에게 한 번도 미술을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미술을 하면 망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죠. 당연히 예고 준비는 전혀 못했고 인문계고에 진학했어요.
고1 미술 수업시 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봤는데 선생님께서 미대를 권유하시더라고요. 물론 아버지는 말리셨지만 그 꿈을 버릴 수가 없었어요. 너무 미대를 가고 싶었죠. 끈질 긴 설득 끝에 결국 허락을 받아서 지금의 자리에 와 있습니다.
Q. 어렸을 적 어떤 학생이었는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 부모님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지 만 반대가 심하셨어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마음먹었죠. 그 자리에서 약속 세 가지를 드렸어요.
우리나라 미술 최고 대학인 홍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하겠다,
입학 후 홍대에서 디자인 일을 하겠다,
나라를 위한 일을 하겠다.
딱 이 세 가지를 약속 드렸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 성적을 내신 1등급, 실기 점수 A+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때부터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짜서, 죽도록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시간관리, 행동,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곤 결국 두 손을 드셨죠. 전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건 2학년 때부터예요.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더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원하는 성적을 얻어 홍대에 진학했고, 교수님과 교직원분들이 제 열정을 높이 사주셔서 홍대 디자인 실장을 2년 정도 했었어요. 또한 군대 역시 해군 연예병사 디자인 사병으로 입대를 하게 돼었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제 꿈을 모두 이뤘다고 할 수 있죠.
Q. 롤 모델이 있다면.
롤 모델은 두 분이 계세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신데 전혀 저와 관련이 없는 분들 같죠(웃음). 저는 이 분들의 사상, 믿음을 배우고 싶어요.
세종대왕은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꿨어요. 저도 모두에게 그런 평등한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또 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 가 남아있다’는 유명한 명언은 제가 힘들었을 때 ‘저에게 천 이 백 원 밖에 남지 않았지만 꿈을 꿀 수 있다’는 말로 들렸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기에 지금도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해요.
Q.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앞서 부모님께 말씀드린 꿈은 다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또 다른 세 가지 꿈을 꾸기로 했죠.
첫 번째, 기업과 사회의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키자
두 번째, 많은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하자
세 번째, 첫번째 두번째 꿈을 통해 사회적가치를 확장시키자
단기적으로는 현재 하고 있는 능력을 키우고, 강의를 하면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을 하고자 준비 중에 있죠. 목표는 교육 기부와 인재 양성 활동을 하면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에요.
Q.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진행 중인데, 친구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데 너무 늦었어요’라는 말을 많이 해요. 고2때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저에게 ‘늦었다는 개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 이 들었어요. 전혀 늦지 않았거든요. 저는 선배들한테도, 엄마한테도 ‘늦지 않았다’고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하니 안타깝죠. 결코 늦지 않았고, 목표를 세우고 행동을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저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예술인들이 겪는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Q.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굉장히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어요. 이 글을 보는 청년들 중에도 분명 저와 같은 분들이 계실 거예요. 사회적으로도 자조적인 분위기가 심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생각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안 된다’는 생각,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불평, 걱정을 할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목표를 세우고 행동하세요. 그리고 몰입해서 그 일을 이뤄내길 바라요.